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

♥이사야 41:17 - 41:20♥

17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18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19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20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

이사야 41장은 바벨론 포로의 두려움과 절망 속에 있는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었고,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미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끝없는 광야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광야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18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광야는 어떤 자리일까요?

광야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광야는 물이 없고, 방향도 없고,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 곳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항상 광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배웁니다.

엘리야는 광야에서 세미한 음성을 듣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신 후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광야를 만납니다.

그럴때마다 '내 인생에 광야가 왜 오는가?'를 질문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광야에 대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광야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는 믿음을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데일리 말씀을 통해서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복음은 언제나 광야 같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복음은 영적으로 메마른 도시로 흘러갑니다.

복음은 상처 입은 가정으로 흘러갑니다.

복음은 소망을 잃은 청년들에게 흘러갑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한 민족에게 흘러 갑니다.

선교는 우리가 복음의 강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강을 내고 계시는 자리를 발견하고 순종하는 자리입니다.

이번에 지구촌초대선교회에서 베트남 목회자 사모님들을 호치민으로 초청하여 위로의 자리를 갖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라 광야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열매가 보이지 않고, 사람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재정도 부족하고, 길도 막혀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20절에 보면 목적이 나옵니다.

20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하나님께서 광야를 변화시시는 이유는 단순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도 광야가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이 시작되는 자리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메마른 곳에 길을 내시고,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시며, 황무지에 생명의 나무를 심고 계십니다.

[기도제목]

1.주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광야같은 삶 속에서 실망하지 않고 주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소서

2.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보게 하소서

3.세계선교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합니다.

아프리카 – 연간 1만 2천 건의 시위 발생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느려

글로벌 분쟁 감시기관인 ACLED에 따르면, 아프리카 전역에서 매년 약 1만 2천 건에 달하는 시위가 발생하고 있지만 정치·사회 구조의 실질적 변화는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탄자니아에서는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로 1천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케냐에서는 청년층 주도의 시위가 발생했고, 모잠비크와 마다가스카르에서도 대규모 봉기와 시위가 연이어 발생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아프리카 시민들이 경제적 불안과 정치권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40년대 이후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시위는 반식민주의, 일당 독재 반대라는 흐름을 이어왔지만 최근에는 경제적 불만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주도하고 있다. 그 결과 단순히 청년층 위주의 시위 참여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소외된 계층의 적극적인 참여가 특징이다.

케냐의 활동가인 완지루(Wanjira Wanjiru)는 나이로비 거리에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홍수로 집이 철거된 것에 분노한 노인 여성들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생계가 불안정한 도시 빈민과 비공식 노동자들이 시위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지만 시위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일부 성과를 거두더라도 정치적 안정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단은 내전에 빠졌고, 부르키나파소는 봉기 이후 군사 쿠데타와 권위주의 통치로 이어졌다. 또한 여러 나라에서는 정부군의 과도한 폭력 대응으로 변화에 대한 열망이 쉽게 꺾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정치적 부패와 빈곤 악화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특히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한 각 나라들의 노력이 뒷받침되도록 기도하자.

(출처, www.economist.com)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세계선교기도제목’ 2026년 5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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