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통치 아래 살고 있는가?
♥로마서 6:4 - 6:12♥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누구의 통치 아래 살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신앙을 '얼마나 믿음을 잘 지키는가'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신앙의 본질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그것은 행동의 변화 이전에 통치의 변화입니다. 복음은 성도의 삶 속에 새로운 왕이 오셨음을 선언함을 의미합니다.
로마 교회에는 한 가지 위험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 오해는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오해에 대해 바울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답을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죄의 권세 아래 살던 인생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옮겨지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본문에 자주 강조하는 표현은 그리스도와 연합입니다.
바울은 반복해서 '그와 함께'라는 표현을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존재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성도는 더이상 죄의 나라에 속한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삶의 장식이 아니라 삶의 주인이 바뀌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성도가 믿음의 결단을 할 것을 촉구합니다.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여기서 '여기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로기제스테 λογίζεσθε(logizesthe)인데, '계산하다', '확정하다', '선언하다'입니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결단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기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자로 여기는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물마시듯이 마시는 사람, 죄에 대하여 느슨한 사람은 늘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는 역시 안되나봐, 나는 여전히 죄인이야,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어'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언급합니다.
'성도는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이다'
데일리 말씀을 통해 나는 지금 누구의 통치 아래 있는지를 점검합니다.
'사단의 통치아래에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는가?'
영적 전쟁은 대부분 생각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나 자신의 누구의 말을 믿고 따르는지, 그리고 누구의 통치를 받느냐가 결정됩니다.
오늘도 사단이 주는 생각을 멈추고,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어제는 밴쿠버광장교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베트남, 캄보디아 선교리포트를 했습니다.
광장교회에서 베트남 어린이 성경보급헌금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한사람, 한교회, 한 성도에 의해 하나님의 역사가 쓰여짐을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가심을 깨닫습니다.
이번주도 선교 리포트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로 인해 바뀐 인생은 가치관이 달라지고,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인생의 방향이 달라짐을 깨닫습니다.
변화된 삶은 복음의 가장 분명한 증거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데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을 통해 복음을 선택합니다.
죄의 통치는 예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1.주님, 오늘 제 삶의 왕좌에 오직 주님만 앉게 하소서
2.캄보디아에서 신학교육을 받는 3명의 목회자(못, 콤, 소피읍)의 사진과 영상을 받았습니다. 더욱 신학교육에 열심을 내어 공부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합니다.
3.이번주 수요일(2/11)에는 선샤인코스트 섬에 들어가서 말씀을 전하고 미션리포트합니다. 그리고 주일(2/15)에는 세계로품은교회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기도부탁합니다.
4.세계선교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합니다.
아시아 – 불교 문화권에서 타종교에 대한 접근 방식 고민해야
싱가포르국제선교센터(SCGM)에서 선교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총(Claire T.C. Chong) 박사는 아시아의 불교 문화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복음의 우선성과 진정성을 내세우면서 타종교에 대해 경멸적인 시각과 공격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위험을 지적한다.
그녀는 올해 1월 선교잡지 Mission Frontiers에 기고하면서 인류학적 내재적 관점(emic paradigm)을 통해 타종교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재고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캄보디아에서 15년간 선교사로 사역했던 그녀는 불교 문화권에서는 종교와 삶, 사회와 우주가 분리되지 않은 비이원론적 세계관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아시아 다수 지역에서는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서구와의 접촉 이후에 형성되었으며, 전통적으로 종교는 민족의 삶의 방식과 통치, 그리고 사회 질서와 윤리 차원에까지 긴밀히 얽혀 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종교적 요소가 공존하거나 결합된 현상으로 보이지만, 이는 신앙적 혼란이나 혼합주의의 위험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안정과 포용을 위한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불교의 담마라자(dhammarāja) 사상과 우파야(upaya) 개념은 통치자가 다양한 종교 전통을 존중하고 활용하는 것으로 공동체의 화합과 평화를 위한 능숙한 도덕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또한 불교 세계관에서 수호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행위도 충성이나 숭배의 의미보다 우주적 차원에서 상호 존중의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이다.
총 박사는 이러한 점을 생각하고 불교 문화권에서 선교사들이 경쟁과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관대함과 분별, 그리고 공존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현지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불교 문화권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의 전통문화와 종교에 대한 바른 이해 위에서 선교적 접촉점을 마련해 나가고, 기독교의 가치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들에게 진정성 있게 전달되도록 기도하자.
(출처, Mission Frontiers, 2026년 1월호)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세계선교기도제목’ 2026년 2 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