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삶의 매뉴얼
♥베드로전서 2:11-21♥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선교적 삶의 매뉴얼
우리는 종종 선교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디론가 떠나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말씀은 특정한 선교사들에 주어진 지침이 아니라 이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삶의 방식, 곧 선교적 삶의 매뉴얼입니다.
이 편지를 받은 성도들은 로마 제국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때로는 오해와 핍박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만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었고, 삶의 자리 한가운데서 믿음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여기서 나그네라는 표현은 잠시 머무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거류민은 시민권 없이 머무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두단어는 우리가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소속된 존재이며 이 땅에 파송된 사람임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정체성은 이 땅에 정착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언급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은 외부환경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욕망, 욕심, 정욕과의 싸움이 더 본질적입니다.
이 싸움에서 지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세상 방식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이 싸움에서 승리할 때 비로서 성도의 삶은 복음을 담는 그릇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복음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베드로 사도는 12절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너희 선한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지 않습니다. 먼저 삶으로 보여집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인의 태도를 보며, 관계를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해석합니다.
선교적 삶은 어떤 삶일까요?
선교적 삶은 내가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순종하는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가 됩니다.
그리고 선교적 삶의 가장 깊은 말씀을 주십니다.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부당한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라고 격려합니다. 이런 상황이 아름답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보기 좋은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상태입니다.
억울함은 피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복음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오해받고, 인정받지 못하고, 때로는 이유 없는 어려움을 겪을 때 성도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것인가?
베드로 사도는 그 해답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모욕을 당하셨지만 맞대응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성도가 따라가야 할 길이 주님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데일리 말씀을 통해 선교적 삶을 묵상합니다.
선교적 삶이란 결국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입니다.
결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살아내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 모두가 선교지입니다.
교회 안이 아니라 가정과 일터,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복음으로 살아내야 함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나그네임을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도 사명자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선한 삶으로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 말씀에 매일 순종함으로 반응합니다.
억울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신앙을 지킵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성도에게 주신 선교적 삶의 매뉴얼임을 고백합니다.
[기도제목]
1.주님,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나그네의 정체성을 잊지 않게 하시고,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복음을 드러내는 선교적 삶을 살게 하소서
2.이번 선교캠프에 최종 23명이 참석합니다. 선교캠프를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알고 선교적 삶을 살게 하소서
3.세계선교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합니다.
지역교회와 선교사, 미전도종족 선교 회피하지 말아야
2월 말, 벨리포지대학교(UVF)에서 가르치는 아일랜드(Jerry Ireland) 박사는 선교저널 EMS에 기고하면서 선교 패러다임이 바뀌고 글로벌 시대가 되었지만 미전도종족 선교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선교 활동 중 75% 이상이 이미 그리스도인이 살고 있는 지역에 편중되어 있고, 미전도종족에게 가는 선교사는 전체 선교사의 3.3%(여호수아 프로젝트에 근거)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지역교회와 선교사들이 보여줄 것 많고 쉽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사역지를 찾는 사역 패턴을 우려했다.
또한 그는 지금 교회의 선교들이 “모든 곳에 가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라”는 전략을 사용하는 듯하다고 말하면서, 지역교회들이 단순히 매력적인 선교 사업에만 후원하는 것은 소비주의적인 신앙의 모습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마태복음 25장 40절(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선교사는 고난을 감수하면서도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열심이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가 지극히 작은 자가 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에서 12년 넘게 사역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일랜드 박사는 지역교회와 선교사들은 이 시대에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인지 분별하는 지혜와 균형감을 가지고 선교지와 선교 대상을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선교에 참여하는 지역교회와 선교사들이 기도와 숙고의 과정을 통해 적합한 선교지를 선정하고, 어려운 사역지에서도 선교사들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선한 청지기로서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하자.
(출처, EMS Journal 6, no. 1)
한국선교연구원(krim.org) ‘세계선교기도제목’ 2026년 4 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