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무지는 죄입니다

♥누가복음 22:63-65; 23:32-38♥

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영적 무지는 죄입니다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본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가상 칠언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로서 누가복음에만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용서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으며 스데반 순교의 사상적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행 7: 60절,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영적 무지는 인간을 죄로 이끕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용서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이 기도는 직접적으로 예수님을 못박은 로마 군병들이며, 더 나아가 자신을 고소한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선동에 따라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친 군중들까지 위한 기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잘못해석하면 그들의 무지가 죄의 정당성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지의 심각성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를 통해 그들의 영적 무지가 그토록 무서운 죄를 범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단은 영적 무지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죄악으로 이끌어 갑니다.

군병들, 종교지도자들과 무리들이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행동이 메시야를 죽이는 데 앞장섰다는 것을 알고 그런 죄를 저질렀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죄인 줄 모르면서 그 죄 깊이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고후 4: 4절,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워 복음의 진리를 보지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사단은 인간의 영적인 시야를 가리고 인식을 흐리게 하여 사람들을 죄악으로 이끌어 갑니다.

성도들마저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로 크고 작은 죄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데일리 말씀을 통해서 영적 무지에 대해서 묵상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나의 마음을 깨우쳐 주셔서 영적 무지 속에서 죄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영적 무지에 빠지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 삶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기도제목]

  1. 영적 무지에 빠지지 않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2. 베트남 단기선교(12월 12일~24일), 베트남 선교바자회(12/7)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지구촌 초대 선교회가 신앙의 인내와 믿음으로 잘 준비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합니다.

  3. 세계중보기도란에 올린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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